顯宗 10년(1669) 왕세자 展謁 의례의 시행과 영향: 주자가례와 조선후기 왕실의례의 접목 양상
- Alternative Title
- Implementation and Effect of the Crown Prince’s Jongmyo Shrine Ceremony in the 10th Year of King Hyeonjong’s Reign(1669): The Fusion of Jujagarye and Royal Rituals in Late Joseon
- Abstract
- 여러 연구를 거쳐 완성되었던 국조오례의는 조선의 특수성을 잘 보여주는 국가의례서였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 이르러 여러 국내외의 상황 변화로 인해 이미 성립된 의례 외에 새로운 의례를 구축하게 되었고, 변화된 상황의 영향을 잘 보여주는 조선 특유의 의례를 축적해 나가게 된다. 그러한 특징을 잘 보여주 는 현상 중 하나가 왕실의례와 주자가례의 접목 현상이었다.
현종 10년에 시행된 국왕과 세자의 종묘 전알은 송시열의 제안에 따라 주자 가례의 속성이 부여된 상태로 진행되었다. 이후 숙종 재위기에 정립된 춘추전 알은 정비과정에서는 주자가례의 절차를 접목할 의도를 드러내지 않았으나, 결과적으로 선례에 해당하는 현종 10년 전알 형식의 영향을 받았고 이는 묘현 정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현종 10년의 사례처럼 의도적으로 주자가례를 왕실 의례에 투영했던 사례도 있었지만,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선례에 의해 연쇄적으 로 가례의 속성을 일부 내포하게 된 사례도 있었다.
현종 10년 왕세자 전알로 인해, 공적인 속성을 띠는 국가의 상징체인 종묘에 서 가부장 중심의 주자가례 절차가 일부 투영된 의례가 시행되었고, 순차적으 로 구축된 종묘 전알과 묘현 의식이 국왕 중심의 구조적 특징을 띠는 것과 동시 에 가부장 중심의 의미를 내포하는 형식으로 구축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되었다.
- Author(s)
- 신진혜
- Issued Date
- 2024-11
- Type
- Article
- URI
- https://scholar.gist.ac.kr/handle/local/9216
- 공개 및 라이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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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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