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기 경상도지역 사족의 상,제례 시행양상과 의미
- Alternative Title
- The implementation and meaning of aristocrat’s rituals in Gyeongsang-do during the Japanese Invasion(1592)
- Abstract
-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시기는 혼란으로 인해 禮制가 문란해졌던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당시의 상황을 전해주는 琴蘭秀의 惺齋日記, 鄭慶雲의 孤臺日錄, 都世純의 龍蛇日記, 張顯光의 避難錄과 「奔竄中事亡儀略」과 같은 경상도 지역의 일기자료를 중심으로 전란 당시의 喪禮와 祭禮가 어떻게 수행되었는가에 대해 검토하면서 약 7년간의 전란기를 단순히 ‘예학의 공백기’로 일반화하기 어려운 사례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선조는 전란 중에 사망자가 많이 발생했음에도 상복입은 백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상례가 문란해진 것이라 의심했지만, 장현광이 피난중에 상례를 시행했던 모습을 보면 피난중인 백성들이 상복을 입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기자료를 바탕으로 경상도 지역의 상황을 살펴보면 전란 피해로 제수를 마련하기 어렵더라도 간소하게 제사를 지속하려하였고, 피난 중에도 어렵게 상례를 수행하려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비록 전란기에 이론적 측면의 예학발전은 어려웠지만, 경험적 측면에서 비일상적 상황에서의 의례경험을 축적해나가고 있었다고 정리할 수 있다.
- Author(s)
- 신진혜
- Issued Date
- 2022-03
- Type
- Article
- DOI
- 10.36093/ks.2022..47.005
- URI
- https://scholar.gist.ac.kr/handle/local/8697
- 공개 및 라이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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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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