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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기 선릉(宣陵)·정릉(靖陵) 도굴과 개장(改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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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신진혜
Type
Article
Citation
역사와 현실, no.140, pp.59 - 96
Issued Date
2026-06
Abstract
본 연구는 임진왜란기 발생한 선릉과 정릉 훼손, 그리고 조선 조정의 개장(改葬) 과정을 통해 당시 왕실이 직면한 의례적 위기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적용한 ‘변례(變禮)’의 실체적 의미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선릉에서는 성종과 정현왕후의 시신 없이 뼛가루, 즉 옥회(玉灰)만 발견되었고, 정릉에서는 옥회와 정체불명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왕릉의 훼손은 단순한 파괴를 넘어 왕조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으며, 조선 조정은 개장도감을 설치하여 위기에 대응하였다. 조선 조정은 전란이라는 물리적 한계 속에서 상황에 맞게 의례를 조율하는 변례를 적용하여 개장을 진행하였다. 특히 정릉에서 발견된 시신이 과연 중종의 것인지에 대한 진위를 증언과 다각도 검토를 통해 가짜로 판명함으로써 국가적 수치를 방지하였고, 비록 뼛가루 형태인 ‘옥회’일지라도 왕실의 권위가 깃든 ‘정치적 신체’로 인정하여 신속하게 개장을 강행하였다. 이는 일본군에 의해 능침이 훼손된 굴욕적 흔적을 지우고 원상 복구를 통해 왕실의 권위를 재확립하려는 목적이었다. 아울러 전란 직후 범능적(犯陵賊)을 인도받아 처형함으로써 대내외에 왕조의 건재함을 드러내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나타난 물자 부족과 절차의 간소화, 명나라에 대한 외교적 사은의 우선 조치 등은 전란 수행이라는 실리적 목적과 왕실의 사적 애통함 사이의 갈등과 조율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조정은 왕실의 위엄 회복이라는 실질적 목표에 집중하였다. 결론적으로 임진왜란기 선·정릉의 개장은 단순한 능침 복구가 아니라 전란의 상처를 씻고 왕조의 영속성을 선포하려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였으며, 변례를 통해 의례를 진행해 나간 과정은 조선 왕실 의례가 지닌 고도의 탄력성을 보여 준다.
Publisher
한국역사연구회
URI
https://scholar.gist.ac.kr/handle/local/34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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