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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13T15:04:10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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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顯宗 10년(1669) 왕세자 展謁 의례의 시행과 영향: 주자가례와 조선후기 왕실의례의 접목 양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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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신진혜</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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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8-25T05:05:11Z</updated>
    <published>2024-10-31T15:00:00Z</published>
    <summary type="text">Title: 顯宗 10년(1669) 왕세자 展謁 의례의 시행과 영향: 주자가례와 조선후기 왕실의례의 접목 양상
Author(s): 신진혜
Abstract: 여러  연구를  거쳐  완성되었던 국조오례의는  조선의  특수성을  잘  보여주는 국가의례서였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  이르러  여러  국내외의  상황  변화로  인해 이미 성립된 의례 외에 새로운 의례를 구축하게 되었고, 변화된 상황의 영향을 잘 보여주는 조선 특유의 의례를 축적해 나가게 된다. 그러한 특징을 잘 보여주 는 현상 중 하나가 왕실의례와 주자가례의 접목 현상이었다.
현종 10년에 시행된 국왕과 세자의 종묘 전알은 송시열의 제안에 따라 주자 가례의 속성이 부여된 상태로 진행되었다. 이후 숙종 재위기에 정립된 춘추전 알은  정비과정에서는  주자가례의  절차를  접목할  의도를  드러내지  않았으나, 결과적으로 선례에 해당하는 현종 10년 전알 형식의 영향을 받았고 이는 묘현 정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현종 10년의 사례처럼 의도적으로 주자가례를 왕실 의례에 투영했던 사례도 있었지만,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선례에 의해 연쇄적으 로 가례의 속성을 일부 내포하게 된 사례도 있었다.
현종 10년 왕세자 전알로 인해, 공적인 속성을 띠는 국가의 상징체인 종묘에 서 가부장 중심의 주자가례 절차가 일부 투영된 의례가 시행되었고, 순차적으 로 구축된 종묘 전알과 묘현 의식이 국왕 중심의 구조적 특징을 띠는 것과 동시 에 가부장 중심의 의미를 내포하는 형식으로 구축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되었다.</summary>
    <dc:date>2024-10-31T15:00:00Z</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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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英祖代 思悼世子 대리청정기 종묘 의례시행 양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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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Shin, Jean-Hae</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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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9-09T05:05:11Z</updated>
    <published>2023-09-30T15:00:00Z</published>
    <summary type="text">Title: 英祖代 思悼世子 대리청정기 종묘 의례시행 양상
Author(s): Shin, Jean-Hae
Abstract: 이 논문은 영조가 사도세자의 대리청정 시기에 어느 정도의 의례적 권한을 세자에게 허용했는가에 대해 종묘의례 시행양상을 중심으로 검토한 결과이다. 영조 27년(1751) 정리된 『續五禮儀補』에 ‘왕세자 종묘섭사의주’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국왕의 친향 의주와 세자의 섭사 의주를 구분해서 설정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대리청정 시기에 각종 종묘 의례가 시행되었던 양상을 검토해본 결과, 대부분의 주요 의례는 영조를 중심으로 시행되었고, 사도세자는 영조의 의례수행을 보조하거나 혹은 일시적으로 영조와 의례를 공동으로 주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대리청정기 사도세자의 의례적 권한은 매우 제한적이었고, 영조의 주요 의례수행을 보조하는 역할에 머물렀다고 정리할 수 있다.</summary>
    <dc:date>2023-09-30T15:00:00Z</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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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奮武錄勳都監儀軌』를 통해 본 영조대 奮武功臣 錄勳 과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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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신진혜</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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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3-18T08:05:17Z</updated>
    <published>2021-11-30T15:00:00Z</published>
    <summary type="text">Title: 『奮武錄勳都監儀軌』를 통해 본 영조대 奮武功臣 錄勳 과정
Author(s): 신진혜
Abstract: 이 글은 『奮武錄勳都監儀軌』를 중심으로 공신을 선정하고 녹훈하는 과정에 내포되어있는 정치사적 의미를 검토하기 위해 정리되었다. 영조 4년(1728)에 무신난이 발생한 후, 오명항을 비롯한 소론계 신하들이 직접 진압에 나섰고 조정에서는 이광좌가 진압을 지휘하였다. 소론 신하들은 반란을 진압한 후에 공로를 논하는 과정에서도 겸양의 태도를 보이면서 조정에서의 입지를 영조로부터 보장받기위해 노력했다. 영조 역시 반란 진압 이후 조정에서 소론세력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무신난의 원인이 붕당에 있었다는 점을 누차 강조하면서 탕평의 중요성을 피력하였는데, 이는 탕평을 지지하는 신하들의 입지를 견고하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영조는 이후 분무공신을 선정하고 의례 행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탕평파를 부각시키려는 입장을 드러내었다. 반란의 규모가 전국적이었던만큼 진압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공로를 세운 사람들이 있었지만 지나치게 많은 공신을 선발하고싶지 않다는 영조의 뜻에 따라 15명만을 공신으로 정하게 되었다. 15명의 공신들 가운데 탕평에 동조하는 신하들이 다수 포함되었는데, 이들은 무신난 진압의 실제적 공로자이면서 한편으로는 영조의 정국운영 방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다.</summary>
    <dc:date>2021-11-30T15:00:00Z</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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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후진성과 보편 수립의 불/가능성의 간극</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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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최서윤</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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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19T05:05:11Z</updated>
    <published>2021-11-30T15:00:00Z</published>
    <summary type="text">Title: 후진성과 보편 수립의 불/가능성의 간극
Author(s): 최서윤
Abstract: 2020년에 출간된 박연희의 『제3세계의 기억: 민족문학론의 전후 인식과 세계 표상』(소명출판, 2020)은 ‘제3세계’라는 학술 용어로 한국현대문학을 계보학적으로 (재)구성한 연구서이다. 저자는 박사논문 「한국 현대시의 형성과 자유주의 시학」 (2012)에 담긴 문제의식을 심화시키며 그간 축적한 연구 성과를 이 책에 모았다. 『제3 세계의 기억』 의 미덕은 인식의 틀(frame)을 국가 차원에서 세계적 차원으로 확장함으로써 전후 한국현대문학에 대한 폭넓고 새로운 논의가 두텁게 전개되었다는 점이다. 제3세계는 전후(戰後)에 탄생한 아시아 · 아프리카 · 라틴아메리카의 신생독립국을평면적으로 가리키는 것이 아니며, 그 국가들을 넘어서는 입체적인 언어이다. 제3세계의 역사적 배경은 냉전과 탈식민이었고, 핵심 정신은 반식민주의 · 반제국주의였다. 그러나 신생독립국이었던 한국에서는 제3세계 국가로서의 자기 인식이 1970년대에 이르러서야 본격화된다. ‘후진성’과 ‘피식민국가’가 그러한 자기 인식에 필요충분조건으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이 글은 『제3세계의 기억』을 읽어 그 필요충분조건이 ‘보편 수립의 불/가능성’에 대한 인식임을 추적했다.</summary>
    <dc:date>2021-11-30T15:00:00Z</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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